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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즐거움/하루 한 꼭지

상사의 방문

천진 김 2024. 7. 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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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전에 모셨던 상임이사님이 객장을 방문하셨다.

오실 때마다 한 시간 이상을 말씀하시다 가시고는 한다.

이제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시고 평범한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대할 수 있지만 근무하실 때는 엄청 카리스마가 넘치셔서 대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내가 회사에 입사할 당시부터 최고 관리자로 계셨기에 내게는 태산 같은 존재였고 그분을 보면서 나도 회사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자 생각했었다.

20년 이상을 직원들을 관리하고 사업을 번창시키며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신 분이다.

오랫동안 최고 경영자를 하시면서 내가 모르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소문으로만 알게 되는 일들도 많았다.

오셔서 옛 일들을 꺼내 놓으실 때마다 모르던 사실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그때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기 때문에 감히 대항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분께 많은 질책과 칭찬도 받았었다.

책임자가 되고 회의에서 말씀하신 몇 가지 말들은 내 기억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손자의 손을 잡고 와서 이곳이 할아버지가 열정을 다해 키워 온 것이라는 마음으로 하신다고 하셨다.

그분의 다른 어떤 소문이나 하신 일들에 관해서는 잊혔지만 그 말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나도 그 말을 되새기며 일을 했었다.

그분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들이 교차하기도 한다.

기분이 좋지 않으실 때는 화를 풀기 위해 작은 꼬투리를 잡아 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치셨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으면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도 어쩔 수없이 쏟아지는 폭탄 같은 발언들을 끝날 때까지 묵묵히 참으며 들어야 했다.

한 번은 기안문을 작성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펜으로 작성된 기안문을 고치시며 다시 써오라고 하셨다.

수정해 주신 대로 기안문을 고쳐 결재를 받으러 갔으나 다시 지적하며 고치기를 몇 번을 했다.

요구하시는 데로 기안문을 고쳐 결재를 갔으나 문장력이 없다는 둥,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냐는 둥 계속해서 트집을 잡으셨다.

최초의 기안문을 제외하고는 다 본인이 수정해 준 내용으로 변경한 것인데 화를 푸시려 했는지 내게 폭언을 하신 것이다.

억울하지만 속으로 삭이며 쏟아지는 폭탄이 빨리 멈추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때는 조합장과 사이가 안 좋아져 예민해져 있을 때였다.

나의 상사는 자신이 들어가던 결재를 얘기가 다 되었으니 가서 받아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결재만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내 기안과 함께 가지고 들어갔다.

내 기안은 직원이 휴일 출근하면 당직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건이었는데 잘 설명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같이 가져간 결재가 문제였다.

조직 개편에 관한 건이었는데 그분의 직속 조직을 변경하는 건이었다.

그 부분이 계속 조율이 되지 않아 감정이 있었던 건이었는데 얘기가 됐다는 말에 생각 없이 들고 들어간 것이다.

나는 그날 그분의 책상 앞에서 내 기안으로 두 시간 이상 야단을 맞아야 했다.

당시 오금이 저린다는 속담을 현실로 느껴야 했다.

어찌나 무섭게 야단을 치시는지 서있는데도 오금이 저려서 제대로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신은 유체이탈 한 것처럼 멍했고 무릎은 힘을 주어도 스스로 흔들리는데 서있는 것조차 힘에 붙였다.

5만 원을 주겠다는 그 기안문에 나는 너에게 조합을 맡기면 말아먹을 녀석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두 시간 이상을 쏟아내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후에야 결재를 받지 못하고 뒤돌아 나왔다.

나오면서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직원들이 볼까 봐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고 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었다.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내셨는지는 알지만 무척이나 서운한 일이었다.

오실 때마다 그때 너무 하셨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고 나도 그만큼 단단해져 있기에 지나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지금은 오실 때마다 나와 얘기하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상사였고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회사를 경영하는 능력은 이후 다른 어떤 상임이사보다 탁월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하시면서 나를 이뻐해 주실 때도 있었고 질책하실 때도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기억에 오래 남을 상사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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