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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주는 힘/2020년 독서록

찌질한 위인전

천진 김 2020. 4. 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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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흔 네번째 책

찌질한 위인전(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고흐부터 스티브 잡스까지 위대할수록 더 찌질한 위인들의 맨얼굴

저자함현식

출판위즈덤하우스 | 2015.6.25.

 


인간은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아니 그들의 명성에 가리워져 있는 그들의 약점을 드러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위인들의 이면 속에 숨어 있는 평범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환경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변화하기도하고 무르 익기도 한다.

저자는 위인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이면을 보여줌으로 그들도 평범한 주변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늘 강의를 들으며 스타트업 기업이었던 젊은 CEO는 자신은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투자한 투자자가 사업을 접으라며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것이며 열심히 빛을 갚을 것이고 다 갚으면 다시 창업을 할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우리가 아는 성공한 이의 모든 성공에는 역경이 존재한다.

그들은 수많은 역경을 딛고 그 자리에 우뚝섰다고 자신의 인생 역전을 전한다.

또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 나갔다고 말한다.

실패에서 배우고 실패의 원인을 찾아냄으로서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위인들의 숨겨진 내면을 보면서 그들이 그 과정에서도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봅니다.

과연 자신이 가진 컴플렉스와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흐와 이중섭은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그림이라는 자신의 재능에 집중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꾸준히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것만이 자신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에는 아무런 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는 주변인들의 소리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젖혀두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찾아 다녔다면 지금의 고흐와 이 중섭의 그림은 대작으로 평가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 이책에서 전하는 만델라, 간디, 스티브 잡스, 허균, 헤밍웨이도 그들만의 시련이 자신의 이면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바라본 그들이 자신들의 그들의 찌질함 속에도 후세에 위인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자신의 불합리하기도하고 상처인 환경을 이겨내기위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영은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가 시인임에도 그는 끊임없이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가 시에 반역하는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했고, 때문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가 꿈꾸는 시인의 이상향에 미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심지어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시인이라면 자신뿐 아니라 동료 시인들에게도 거침없이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우리에게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또한 김수영과 꽤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내내 김수영으로부터 알맹이는 없고 겉멋만 잔뜩 든 시를 쓴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이는 김수영이 오만하고 건방져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김수영은 그 자신 또한 자신이 꿈꾸는 시인의 모습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김수영이 생각하는 시인은 ‘온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를 쓰는 것이었다. 김수영에게 있어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우직하게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27~28쪽

평생을 어머니와 반목했던 빈센트가 어머니를 용서했던 것도 이 시점에서였다. 서글프게도, 그것은 성공한 빈센트가 어머니를 이해했기 때문에 용서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 자신을 정신병원에 보내려 한 어머니와 결정적으로 틀어졌던 빈센트는, 자신에게 정말로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깨닫게 되자 어머니를 용서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빈센트 인생에 단 한 번도 그에게 생계 수단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러나 빈센트에게 있어 그림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 빈센트가 정신병원에 자기 발로 찾아 들어간 이유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의 상태가 회복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래왔지만 이제 정말로 그에게 남은 것은 그림 그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가 살아야 할 이유 또한 그것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빈센트는 그때부터 자기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을 이어 나간다.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49~50쪽

중섭의 곁에서 그를 돕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는 딱 그만큼, 한편으로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이롭기는커녕 해롭기가 독과 같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딱히 이중섭에게만 해당되었던 일이 아닐 것이다. 전쟁이란 본래 인간성의 바닥을 드러내기 가장 쉬운 환경이니까. 전쟁이 끝난 후의 폐허에서 타인을 대할 때 온전한 선의만을 갖고 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법이다. 이중섭 개인에게 있어 불행은, 자신에게 이로운 사람은 곁에 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내칠 수 있을 만큼 그가 약지도 모질지도 세상 물정에 밝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아이들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좀처럼 내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80쪽

커다란 덩치에 폭력을 즐기고, 위험에 매혹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시험했던 헤밍웨이는 내적으로는 매우 여리고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것은 그를 알고 지낸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거트루드 스타인과 스콧 피츠제럴드의 부인 젤더는 헤밍웨이가 실은 겁쟁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이 헤밍웨이에게 적의를 품고 있긴 했으나 헤밍웨이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므로 허무맹랑한 낭설로 치부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뿐만 아니라 헤밍웨이의 평전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그를 일컬어 ‘떨리는 감수성과 폭력에 대한 몰두가 이처럼 불가사의하게 결합된 존재가 이 지상에 걸어 다닌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그 밖에도 헤밍웨이를 알고 지낸 여러 사람들, 그의 가족 등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그에게 겉으로 보이는 강인한 이미지와는 상반된 다른 면이 공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떠나기 전에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혼자 남고 상처받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결혼 생활마다 간통을 저질러 아내들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방어했다.---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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