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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4: 약소국의 생존 전략 본문
2020년 일백 마흔 다섯번째 책

춘추전국이야기. 4: 약소국의 생존 전략(개정판)
저자 공원국
출판 위즈덤하우스 | 2017.10.20.
기원전 543년 자산이 드디어 정나라의 정경正卿이 되어 정치를 시작했다. 자산의 내정개혁은 기강잡기와 살림살이에서 시작했다. 그는 국도와 비읍을 구분 짓고, 의복으로 상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전지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정전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오伍로 편성했다. 대부들 중에서 사치한 사람은 내치고 검약한 사람을 등용했다. 모두 가난하고 문란한 정나라의 현실을 혁파하기 위한 일이었다.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자산의 행동은 고도로 계산된 것이었다. 그가 노린 것은 목공의 후예들 중 비대해진 씨족들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나라는 목공의 후예들이 공실을 억누르고 사병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있었다. 그러니 국도와 비읍을 구분 지어 사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지 못하게 하고, 씨족 세력이 아니라 관직을 중심으로 상하관계를 재편하기 위해 의복으로 직급의 고하를 표시하고, 분쟁의 소지가 되는 전지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농민들을 국가가 바로 동원할 수 있는 체제로 묶었다. 이렇게 되면 거대 씨족들은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거대 씨족들의 소비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공실과 씨족의 차별화를 기도했다. _224~225쪽, 〈제10장 자산의 개혁정치〉 중에서
당시 정나라 사람들은 향교에 모여 정치를 평했다고 한다. 물론 집정 자산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상 1호였을 것이다. 집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자 연명이 자산에게 향교를 폐지하자고 건의했다. 그러자 자산이 말했다.
“왜 그런단 말이오. 대저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향교로 나와 어울리면서 집정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데, 옳다고 하는 것은 내가 바로 행하고, 그르다고 하는 것은 내가 반성하여 고치면 되오. 그러니 향교는 나의 스승인데 어찌 폐지한단 말이오? 나는 정성스러움과 착한 행동으로 원망을 줄인다는 말은 들었지만, 위세를 가지고 원망을 틀어막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어찌 힘으로 여론을 (잠시 강제로) 틀어막을 수야 없겠소. 허나 이것은 강물을 막는 것과 같아서 꼭꼭 틀어막았던 것이 터지면 반드시 여러 사람을 상하게 할 것이오. 그러면 나도 구제할 도리가 없소. 그보다는 물길을 터서 조금씩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낫소. 또 내가 그들의 말을 듣고 약으로 삼는 것이 오히려 낫소.”_227쪽, 〈제10장 자산의 개혁정치〉 중에서
『한비자』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는 분명 『좌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약간 비틀어서 기록해놓은 것이다. 거기에는 자산이 자대숙에게 한 유언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그대가 정나라의 정치를 맡을 것이니, 그대는 반드시 엄하게 사람들을 대하시오. 대저 불은 형상이 무섭기에 불에 데는 사람은 적소. 그러나 물은 약해 보이기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소. 그러니 그대는 반드시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약한 모습을 보이어 사람들이 다치게 하지 마시오.”
이렇게 공자는 자산의 말에서 조화를 읽었고, 한비자는 엄격함을 읽었다. 자산은 분명히 먼저 관대함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큰 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관대함으로 다스리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자산은 한비자와는 격이 다른 사람이다. 또 그들이 처한 역사적인 상황도 달랐다.
『설원』에 “자산은 18년 재상 생활에 오직 두 사람만 처형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엄한 정책이 오히려 사람들을 적게 죽였음을 높이 평가한 말이다.
『인물지』에서 자산을 인격(덕)과 엄격한 원칙(법), 정치적인 수완(술)을 모두 갖춘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도 자산의 다면성 때문이다. 자산의 행동을 찬찬히 짚어보면 그는 작은 나라에서 덕치를 행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자산이 진나라나 제나라에서 태어났으면 관중이나 호언을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충실한 기반을 가진 이론가인 동시에 한계를 직시한 행동가였다. _312~313쪽, 〈에필로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