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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주는 힘/2025년 독서록

호모데우스

천진 김 2025. 2. 28.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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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맞이 할 미래의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유발하라리는 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어려워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 것인지 디스토피아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예측에는 동의 한다. 인간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의미보다 힘과 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어떤 방향의 설정의 하는 가에 따라 미래는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얼마나 이타적인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책에서 찾은 문장들

어제의 비극을 극복했다고 해서 오늘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 절대적 고통을 없애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중세시대의 굶주린 농부를 기쁘게 하려면 빵 한 조각으로 충분했다.

우리가 거대한 미지의 세계로 빠르게 돌진하고 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죽음 뒤에 숨을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은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아 그 속도를 늦춰줄 거라는 바람이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 폐기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과거의 영향을 피할 수 없으므로 이것이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약간의 자유라도 있는 편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인류는 농업혁명으로 동식물을 침묵시키고, 애니미즘이라는 장대한 경극을 인간과 신의 대화로 바꾸었다. 그런데 인류는 과학혁명을 통해 신도 침묵시켰다. 세계는 1인극으로 바뀌었다. 인류는 텅 빈 무대 위에 홀로 서서 혼자 말하고, 아무와도 협상하지 않고, 어떤 의무도 없는 막강한 권력을 획득했다. 물리, 화학, 생물의 무언의 법칙들을 해독한 인류는 지금 이 법칙들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있다

우리가 알기로는 사피엔스만이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매우 유연한 방식으로 협력한다.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을 정복한 이유는 불멸의 영혼이나 어떤 특별한 종류의 의식이 아니라 바로 이 구체적 능력 덕분이다.

사람들은 다른 유권자들과 기본적인 유대감을 공유할 때만 민주적 선거의 결과에 승복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유권자들의 경험이 나와 매우 다르다면, 그리고 그들이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에게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투표에서 100대 1로 져도 그 평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종교나 민족신화 같은 공동의 결속으로 묶인 집단 내에서만 민주적 투표가 효력을 발휘한다. 민주적 투표는 기본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자기반성은 오히려 자신에 관한 진실에서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결정에 지나친 공과를 돌리고 사회조건은 거의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부자라면 그것은 내가 명민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난 속에서 허우적댄다면 내 실수 때문일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대중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가들이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정의한다면, 맞는 말이다

나는 내 욕망을 선택하지 않는다. 단지 그 욕망을 느끼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자유주의가 결국 사회주의에 승리를 거둔 것은 사회주의 프로그램의 가장 좋은 부분들을 채용했기 때문이었다. 21세기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어떤 가치도 없으며, 사회의 번영, 힘과 영광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쓸모없는 계급’은 그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유주의가 직면한 몇 가지 실질적 위협

첫 번째는 인간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쓸모없어질 거라는 점이다

두 번째 위협은, 미래에 시스템이 여전히 인간을 필요로 한다 해도 개인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21세기의 신기술들은 이렇게 인본주의 혁명을 뒤집어, 인간에게서 권한을 박탈하고 비인간 알고리즘들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변화가 끔찍하다 해도 컴퓨터 괴짜들을 탓하지 마라. 진짜 책임은 생물학자들에게 있으니까. 컴퓨터 과학이 아니라 생물학적 통찰이 이런 추세를 추동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유기체가 알고리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생명과학이다. 그렇지 않다면(유기체가 알고리즘과 원천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면) 컴퓨터가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도 우리 인간을 이해하거나 우리의 인생을 이끌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와 융합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라고 결론을 내린 순간,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컴퓨터 혁명이 순수한 기계적 사건에서 생물학적 격변으로 바뀌고, 권한이 개인에게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알고리즘들에게로 이동했다.

완전히 새로운 위협에 직면할 때조차도 우리는 지난 날의 적에 대한 방어를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개별성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항상 집단의 횡포를 경계하지만, 정반대 방향에서 인간 개별성에 대한 위협이 오고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개인은 빅브라더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조용히 붕괴할 것이다.

20세기 인간의 거대한 프로젝트(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하는 것)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풍요, 건강, 평화의 보편적 표준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21세기의 새로운 프로젝트(불멸, 행복, 신성을 얻는 것) 역시 포부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의 목표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능가하는 것이라서, 새로운 초인간 계급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는 데이터를 나누어 처리하는 반면, 공산주의는 중앙에서 모두 처리한다. 자본주의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그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자유시장에서는 한 프로세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다른 프로세서들이 잽싸게 그 실수를 활용한다. 하지만 단일한 프로세서가 거의 모든 결정을 내릴 때는 실수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이기고 공산주의가 패한 것은 자본주의가 더 윤리적이어서도, 개인의 자유가 신성해서도, 신이 이교도인 공산주의자들에게 분노해서도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적어도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중앙 집중식 데이터 처리보다 분산식 데이터 처리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의 이동은 그저 철학적인 혁명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용적인 혁명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혁명은 모두 실용적이다.

사상은 행동을 바꿀 때 비로소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당신은 고대 예루살렘에 살았던 사제와 랍비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일 때 당신은 오랜 진화를 통해 개발되어 자연선택의 엄격한 품질검사를 통과한 알고리즘을 따르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대개 현시점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시스템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현시점에 우리가 처한 조건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근대 과학은 우주가 계획도 목적도 없는 과정임을 밝혔다. 인간은 모든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던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대신 과학 발전과 경제성장을 통해 스스로 힘을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의미가 없이는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때마침 인본주의라는 혁명적인 새 종교가 나타나 인간은 힘을 무한히 추구하면서도 의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