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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정을 받아내다.

천진 김 2020. 8. 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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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고 아침부터 쏟아붓는다.


아침에 내리는 비를 생각했으면 조금 서둘렀어야 했는데 평상시와 같은 활동을 하니 도로에 차들이 비에 뒤엉켜 엉거주춤하며 제 갈길을 가지 못하고 서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비로 인해 도로가 침수되어 우회하라는 뉴스가 계속해서 나오고 사람들은 거기에 맞추어 갈길을 찾느라 분주해 보였다.


나도 내 갈 길을 찾아 더듬더듬 엉기적거리며 회사에 출근했다.


휴가로 휴식 후 새롭게 출근하는 날이라 나름 서두른 것인데 쏟아지는 비는 나의 생각을 야속하게도 빗나가게 만들었다.


오늘은 비가 내리니 객장에 손님이 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렇지만 비가 오더라도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기에 언제나처럼 객장을 찾는 고객은 있었고 다른 날보다 조금 한산하다는 정도일 뿐이다.


언제나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는 날씨와 상관없이 방문하시어 잘 듣지 못한다고, 글을 모른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신다.


그리고는 한마디 하신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왜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사실까?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이 더 오래 사신다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우리 할머니도 연세가 많으셨어서 가끔 내게 그런 말을 하기도 하셨다.

그러면 내가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곤 했었다.


그래서 그런 어르신이 있으면 웃으며 말씀드린다.


그런 말씀하지 마시라며 아직 정정하시다고 말씀드린다.


그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드릴 수 있는 위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객장에 매달 연금을 찾으러 오시는 할머니는 통장을 잃어버렸다고 오셔서 재발급해달라고 말씀하신다.


그때는 약간 정신을 놓아서 치매끼가 오실 때다.


그러면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찾아보시고 오라고 하면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통장을 찾아오신다.


그런 분이 이제는 모시지 않는다고 지난번에 따님과 오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잘 응대해줘서 고마웠다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단지 우리 할머니 같아서 할머님의 투정을 받아들인 것뿐인데 말이다.


따님이 오셔서 이제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고 하셨다.


이제는 할머니가 오셔서 그런 투정을 부리시지는 않겠지만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렇게 떠나시는 분들은 얼마 후 세상을 타개하셨다는 소식을 듣곤 했기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었다 필요에 따라 떠나는 곳이다.


그리고 가끔은 대화가 필요해 오시는 분들도 있다.


하루의 일상이 반복되는 곳이지만 사람이 서로 부딪히고 짧은 관계를 맺어 서로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곳이 내가 일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도 있고 나누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나는 잘나고 특출 난 사람은 아니지만 이 곳에서만은 정겨운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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