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일기

토지10권 본문

독서가 주는 힘/2019년 독서록

토지10권

천진 김 2019. 3. 29. 08:48
728x90

21권으로 구성된 토지 전권에서 이제 10권 째를 읽었다. 어느새 반환점이다. 10권은 3부의 제2편 '어두운 계절' 6장부터 16장까지와 제3편 '태동기'의 10장까지를 담고 있다.

9권에서 임명빈의 동생 명희가 갑작스레 주요인물로 나서는 듯 하더니 10권에서는 비중이 높다. 시작과 끝이 모두 명희를 중심으로 한 얘기다. 일본유학도 했지만 당시 회자되는 신여성이라기에는 열정이 부족하다. 강선혜를 따라 갔던 덕화 병문안에서 조용하,찬하 형제를 만난 후 그간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인생경로를 걷는다. 결국 남작 집안의 장남 조용하와 결혼을 하고 외양으로는 부유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박제한 학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고보면 이상현의 인기가 참 높다. 당자끼리 확정적인 대화는 안했지만 서희와는 서로에게 깊은 호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명희 또한 상현을 흠모했다. 하지만 상현은 진작에 혼인을 하였기에 호감만 눈으로 마음으로 주고 받을 뿐 진전이 있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기화하고는 달랐다. 서희나 명희를 대하는 마음과 기화를 대하는 마음은 달랐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신분에 얽매인 사람이다. 서희가 길상과 혼인을 거론했을 때 크게 역정을 내던 그의 모습이 극명하게 그의 생각을 반영한다. 전주에서 기화의 집을 찾아갈 때 도움을 받았던 기생인 산호주를 통해서 기화가 자신의 딸을 낳아 키우고 있음을 알았지만 상현은 그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주갑이 다시 나타났다. 김두수와 한복 형제가 만난 후 한복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오겠다 했던 전편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사이 어떤 큰 일이 있을 걸 기대했었다. 그러나, 10권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눈에 띄지는 않아도 그는 독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여태 알고 있던 그답지 않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의 뒷모습에 놀랐다. 그는 간도에서 자신의 급체를 가라앉혀 주었던 강의원을 따라 떠났었는데..

박경리 선생께서는 평사리에서 등장했던 인물 하나하나를 놔두지 않으셨다. 큰 존재감은 없었어도 야무네 일가의 이후 삶도 다시 나타났다. 섬으로 시집간 딸 푸건을 데리고 오는 과정은 당시의 풍습이 지금과는 너무 다름을 더욱 깨닫게 해주었다.

평사리 집을 되찾았지만 진주에서 돌아오지 않았던 서희는 추석을 맞이해서 평사리로 행차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전곡을 풀었고 오광대까지 불렀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좋은 시간이었으나 느닷없이 일본군이 마을을 포위하면서 순식간에 위기의 시간이 되버린다. 마당쇠가 죽었고 홍이를 포함하여 16명이 끌려갔다. 김환은 서희의 도움으로 몸을 숨길 수 이었고, 그 무리들은 탈을 쓰고 살아남았다. 홍이 등이 풀려나는데에 서희의 힘이 뻗쳤으며 연학이 수족이 되어 도움을 주었다.

젊은 시절 용이의 로맨스가 소설의 다른 한 축을 이루어 주었는데, 이번엔 용이의 아들 홍이가 로맨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버지만큼 절절한 사연을 만들어낼지는 더 지켜보련다 ^^ 장이와의 인연은 끊어질 듯 이어졌으나 다시 끊겨 버리고 말 것인지 궁금하다. 홍이는 김생원의 딸 점아기의 첫째인 보연과 혼인을 한다. 김생원이 살아있었다면 양반이 아니라고 반대했겠지만 점아기가 보기에 홍이는 좋은 신랑감이었던 것이다. 혼례까지 과정에서 여러가지 묘사들은 또 하나의 재미난 경험을 주었다.

서의돈은 상해에도 다녀왔고 일본에도 다녀왔다. 이제 다시 그는 고민한다. 국경을 넘을 것인지를 두고 말이다. 10권에서는 주로 그를 중심으로 한 대화들을 통해 그 시대의 여러 국제정서와 의미를 얘기하고 있다. 토지가 간단한 소설이 아니라 큰 스케일에서 역사를 다루고 있는 대하소설임이 더욱 부각되는 장면들이다. 3.1운동 얘기가 나오고 임시정부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독립운동의 갈래들이 설명된다. 관동대지진에서 겪은 조선인들의 억울한 참사도 그와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독자는 알게된다.

서의돈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고민하고 있다면 상현은 움직이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상현과 그 친구들 또한 시국에 관한 많은 얘기들은 해준다. 엄밀히 말하면 독자들을 위해서 하는 듯 하다. 물산장려운동의 의미는 좋으나 그 이면에서 자신의 뱃속만 채우는 이도 있었던 듯 하다. 같은 시기에 읽었던 책 아나키즘에서 언급된 아나키스트 박열 지사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서로 다른 책을 읽었으나 같은 내용이 들어 있으니 반가왔다.

길상과 서희의 큰 아들 환국이는 번듯하게 자라고 있다. 공부를 잘 해 줄곧 1등을 했고 서울로 진학을 했다. 종놈의 아들이라 비하하며 덤비는 친구를 때려눕히는 강단도 있다. 다음 권에서는 환국이의 서울 생활 모습이 주로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환국이의 입학을 위해 서울 임명빈의 집에 방문한 서희는 혜관이 언급했던 선일여관을 오가는 길에 지나치며 무수히 많은 갈등을 하는 듯 하다. 이번 권에서 길상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그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긴 한데, 이번 권에서는 그냥 지나친다.

관수와 연학은 두만의 술집을 찾아가고 말이나마 다툼을 한다. 두만은 최참판댁의 땅을 경작하던 과거와 단절하고 싶어한다. 반면에 백정의 사위인 관수는 숨기기보다 극복하려 한다. 그를 통해서 형평사 운동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백정에 대한 차별대우를 없애기 위한 운동이었고 소설의 당시 주 배경인 진주에서 출발하여 전국에 지사를 두고 전개한 운동이었다고 한다. 두만과 사돈간인 연학은 여러모로 서희에게 든든한 일꾼이라고 해야겠다.

                   

“젊은 선상, 강우규 어른을 아신다요?”

어세가 뚝 떨어진다.

“강우규 의사를 모를 사람이 있겠소?”

‘왜 갑자기 강우균가. ’

3·1운동의 수습책으로 작년 구 월에 해임된 하세가와[長谷川] 총독 대신 사이토[齋藤]가 후임으로 부임하던 날 남대문 역두에서 폭탄을 터뜨린 예순다섯 살의 노인 강우규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노인은 며칠 전에 처형되어 이 세상에는 이미 없다.

“알기는 많이들 알 것이여. 이름 석 자를 안다는 얘길 것이여.”

얼굴을 숙인다. 눈물방울이 무릎 위에 투덕투덕 떨어진다.

“그 어른을 이자는 볼 수 없단 말시.”

“……?”

“그 어른은 내 선상님이여라. 으흐흐흐흣…….”

상현과 주갑의 대화다. 강우규 의사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소설에서 언급하는 사건이 어쩐지 허구가 아닐 듯 하여 찾아봤다. 강우규 의사는 실존인물이다. 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간도로 망명했다가 서울로 잠입하여 남대문에서 폭탄을 던졌다가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 주갑이 따라 다녔던 강의원의 행적과 일치한다. 박경리 선생께서 절묘하게 역사적인 사실과 인물을 소설의 이야기로 엮어놓은 것이다.

“집구석에 이런 일만 안 났어도 우리 입으로 데려가라 마라 하지는 않았일 기요만, 생때 겉은 내 자석이 죽을 판인데 할 수 없는 일 아니겄소? 그나마 우리만 하니께 그동안 보아왔지 다른 사람들 겉으믄 어림이나 있었겄소? 제 밥 찾아 묵기도 바쁜 형편에 말이오. 게다가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더라고 생때 겉은 자석이 드러눕고 보니, 점도 치게 되고 굿도 하게 되고 집구석이 결딴날 판이오. 우리 집안에서는 구신이 덧들(건드릴) 일이 없소. 점괘에 납디다. 작은아아 친정아부지가 나오더마요. 사람 하나 잘못 들어온 탓으로…….”

야무네의 사돈이 하는 말이다. 풍습의 무서움이다. 며느리인 푸건이 아파 누워있는데도 그간 내쫓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자신들이 너그러워서 그랬다는 투다. 아들도 아프니 이제는 데리고 가라, 그동안 우리 집안이 잘못되고 있는 것은 며느리가 잘못 들어온 탓이다... 안되면 그 탓을 어디론가 돌려야 하는 나쁜 풍조고, 이미 식구가 되어 여러해를 살아온 며느리가 밥만 축내고 있다고 데려가라 한다. 그 시기 그 세상 풍습이 그랬다니 너무 안타깝다.

무정부주의자 박열(朴烈), 박열을 두고 말할 것 같으면 독립운동에 관련되어 경성제이고보에서 퇴학을 당했고, 지식청년들에게 매혹적인 무정부주의자로 변신한 것은 일본으로 건너간 후의 일이다.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에 가입, 일녀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를 암살하려다 거사 전에 발각되어 체포된 것이 작년 시월이었다. 공산주의와 상충하면서 국제주의(國際主義)를 표방하는 무정부주의가 독립운동과는 계열이 다른 것은 물론, 상당한 조직과 위협을 내포하고 있는 일본의 무정부주의 사상을 토양으로 한 박열의 거사계획을 두고

무정부주의가 아니고 반강권주의라고 해야 맞는데... ㅎㅎㅎ 박경리 선생 또한 무정부주의자라고 썼다. 한 번의 오역이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면 여러 곳에서 이렇게 흔적이 남을 수 밖에 없다. 박열 지사는 일본에서 아나키스트로 활동하기 전부터 이미 고교시절부터 독립운동에 관여했었나보다. 더없이 확실한 애국지사인데 영화에서 부각됐던 모습만 보고 오해했던 내가 또 부끄러워진다... ^^;

“그 이동휘도 이제는 숨통이 막혀버린 것 아닐까? 작년에 이르쿠츠크파가 조선공화국이라는 것을 조직했으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놈이 먹고.”

“이동휘는 이미 흑하사변 때 간 사람이고 꽤 일은 많이 했는데 결국 이르쿠츠크파가 승리한 것은 텃세가 주효한 거 아니겠어?”

“텃세나 재주가 어디 있어? 승리는 또 어디 있고? 조선독립군이 주축이 될 원동혁명군의 편성을 두려워한 일본의 입김이 흑하사변으로 몰고 간 게야. 이르쿠츠크파의 중상모략, 자금약탈, 사할린 군대의 이탈 같은 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야.”

내가 이런 일들을 알 턱이 없다. 근대사를 제대로 배운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배울 당시 우리 역사교과서의 근대사는 철저하게 공산주의나 소련과 연관된 우리의 역사는 배제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지만 내게는 깜깜이에 속하는 범위다. 현재의 시각에서 비판은 하더라도 사실 그 자체만은 알게해야 할 텐데 아쉽다. 이래가지고는 어디 가서 토론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싶다. 마치 저희네 앞바다에 있는 조그만 섬 다케시마와 우리 땅 독도를 구분 못하다가 이제는 마치 독도마저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저들과 같은 꼴이다.

“그랬다면 환국이 잘못한 것은 없구나. 네 잘못이야. 왜냐하면 환국이아버님은 종이 아니었거든. 그리고 나라 위해 몸 바친 분이었단다.”

박의사는 눈길을 떨어뜨렸다. 강인한 억제, 마지막의 말은 모든 것을 건 모성(母性)의 승리였다.

“순철어머니, 순철이 상처가 빨리 아물었으면 좋겠군요.”

통통하게 살찐 손을 잡아주고 미소 지으며 서희는 돌아섰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서희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나왔다. 거리는 어두웠다. 아주 어두웠다. 강가까지 온 서희는.

‘여보, 당신이 그곳에 남은 뜻을 이제 확실히 알겠소. 하지만 장하지 않아요, 당신 아들 환국이가?’

찬 바람 속에 서서 서희는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하는 서희가 대단하다. 그리고, 명확한 이유를 들어 잘잘못을 정리한다. 그 참에 길상에 대한 생각이 원망만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라를 위해 몸바친 분이었다는 말로 환국이에게도 분명히 일러주는 셈이다. 왜 길상이 같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서라는 것으로 부족했던 설명이 절로 풀려진다. 신분의 차이로 인해 생겨날 더 큰 갈등을 길상은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교밖에는 아무 일 안 한다는 본시 취지에서 본다면 그거 발전입네다. 선교밖에는 아무 일도 안 한다, 특히 남의 나라서 그럴 만한 이유 있습네다. 선교사들 정치 관여하여 핍박 받았습네다. 또 약소국 침략하는 데 앞잡이 죄 저질렀습네다. 그런 일 때문에 선교는 개인 영혼을 그리스도로 이끄는 일만 해야 하느냐, 사회에까지 참여하느냐 매우 어렵습네다. 내 개인으로는 참으로 돕고 싶은 심정 간절합네다마는.

선교사 헤이워드의 말이다. 이미 그들은 더 앞선 세기에서 제국주의나라들이 선교사들을 앞세우며 했던 잘못을 절실히 반성하고 있었던 듯도 하다.

양근환의 폭력은 지순한 것입니다. 민원식의 죽음은 우리 민족이 살아남아 무궁하게 주를 경배하기 위하여 마땅한 일이구요. 그러한 무리 때문에 우리 민족이 곤욕을 겪어야 하며, 남부여대,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슬픔을 생각할 때 주의 이름으로 그런 악의 뿌리는 잘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희의 친구 여옥이 헤이워드와 대화 중 하는 말이다. 종교란 무엇인가를 종교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어떻게 발현되는 게 옳은가는 항상 양날의 검이다.


첫권부터 이어져온 인물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새로운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배우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은 1920년대를 달리고 있는 참이다. 10권에는 콧배기도 안 내비친 길상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독서가 주는 힘 > 2019년 독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지12권  (0) 2019.03.29
토지11권  (0) 2019.03.29
토지9권  (0) 2019.03.29
토지8권  (0) 2019.03.29
토지7권  (0) 2019.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