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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주는 힘/2019년 독서록

토지11권

천진 김 2019. 3. 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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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에는 3부 제3편인 '태동기'의 11장부터 18장까지가 들어있고, 제4편인 '긴 여로'의 14장까지가 들어 있다. 10권에서 시작한 제3편 '태동기'는 그 제목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무엇의 태동기인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세대의 주요인물이 명멸하고 만다. 상징적인 역설일 수도 있겠으나 함부로 넘겨 짚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환국이는 의젓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 임명빈의 집에서 유학하고 있다. 방학 때 진주에 내려갔다가 박외과 의원에서 마주친 소림이 때문에 괴롭다. 사춘기의 상처로 남을지 더 인연이 있을지는 두고봐야겠다. 소림은 부유한 양씨 집안의 딸이고 엄마는 홍씨다. 명희의 남편 조용하와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도 모를 홍성숙이 이모다. 놀랍다기보다는 먼 친척으로 조준구의 처 홍씨가 있다는 사실은 재밌기도 하다. 8촌 바깥일 것 같은데 책을 잡으려면 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은 소림의 왼 손 등에 있는 혹이 더 큰 흠이다.

명빈의 집에 왔다가 환국을 본 상현의 마음이 쓸쓸하다. 상현은 멀리 떠나간다.

김환은 돌아왔다. 윤씨부인의 무덤에서 절을 한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다. 결국 청일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내세운 지삼만 측의 밀고로 붙잡히고 만다. 수감은 됐으나 뭔가 더 다른 반전이 있지는 않을까 기대도 해봤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보다 더 사실같은 소설이다. 역부족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반전은 없었고 김환의 최후는 더욱 쓸쓸했다.

효부로 인지되어 있는 복동네가 자살을 했다. 억울함을 어찌하지 못해 그리 한 것이다. 과부의 심정을 아는 야무네와 마당쇠댁의 동병상련 덕에 죽은 뒤에나마 누명을 벗는다. 봉기를 움직이게 한 석이의 지혜가 돋보였다.

계명회의 명부에 올라있었던 길상이가 서울로 잡혀왔다. 서의돈과 함께 였고 선우일, 선우신 형제, 유인실 남매, 일본인 오가타 지로 등이 함께 체포된 회원이었다. 10권에서는 콧배기도 안 뵈던 길상이 나타나서 반갑기는 했으나 등장하는 부분이 너무 짧다.

강선혜의 마음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내소박을 하고 부모와 같이 산다. 권오송을 흠모한다. 그러나, 고백하지 못한다. 자존심이 가로 막는다. 그래도 사심을 가지고 잡지사에 도움을 주려한다. 하지만 작정을 하고도 눈물만 더 나는 상황을 맞이한다.

기화가 돌아왔다. 서희의 부탁을 받고 평양에 있던 기화를 석이가 데려왔다. 이 일로 석이의 집안은 편치가 않게 된다. 기화와 딸 양현은 평사리 최참판댁에 기거한다. 그러나, 기화는 예전같지 않다. 갑갑하다. 벗어나려 한다. 숱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기화와 엮여있다. 어릴적 함게 자란 서희는 물론이고 바라만 보았던 길상은 이제 아련하다. 간도로 함께 가지 않고, 진주에서 기생의 길로 들어선 봉순이다. 운삼의 도움으로 명창이 될 기회는 여러번 있었으나 스스로 매번 걷어찬 꼴이다. 운삼은 죽으면서까지도 기화를 챙겼다. 서의돈이 있었고, 이상현도 있었다. 그리고 한 켠에는 봉순을 바라봐 준 석이가 있었다. 기화는 위태롭다.

석이의 처 을례는 결혼전과는 딴판이다. 하지만 질투가 나는 것도 이해할 만 한다. 보기에 아무런 일이 없더라도 남편의 마음이 기화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싫다. 아무런 일이 없었어도 석이는 굳이 변명하지 않는다. 마음만은 외도와 다름없다. 아들내외의 불화에 숨죽이던 석이네, 손녀를 업고 병원을 찾아가는 석이네의 가슴이 무너진다.

산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강쇠였다. 욕심없이 살았으나 정의와 불의를 아는 강쇠는 억울하다. 자신이 당한 일은 문제가 아니다. 의식이 있은 후로는 오로지 김환을 바라보며 따르며 살아왔던 일생이다. 자신의 정신을 이끌었던 지주가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밀고를 알아차린 강쇠는 게획을 세웠다. 사촌 동생 짝쇠와 일을 꾸미고 있다.

긴 여로가 계속된다. 토지를 읽어가는 내게도 여전히 긴 여로가 남아있다.


상현은 껄껄껄 소리 내어 웃는다. 뜻밖에 그는 홀가분해하는 표정이다. 명희도 웃는다. 사랑의 고백치고 피차가 지나치게 격렬하고 거칠기조차 했는데 그들은 심각해지는 대신 웃은 것이다. 속을 털어버린 시원함이 그들을 웃게 했을까. 입으로만 태워버린 정열의 허무함 때문에 웃었을까. 상현은 명희가 자신의 불행한 자리를 지킬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명희는 상현이 떠날 것이며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웃었는지 모른다.

상현과 명희는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매듭을 잇지 못한 남녀다. 마음만으로 바라보다 딱 한 번 제대로 마주하여 큰소리를 주고 받고 물러섰던 그들이었다. 이제는 홀가분하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각 자의 미래가 어찌 흘러갈지 확신한다.

“오라비 대하듯 지내온 사이니까 너 이군한테 이별주 한잔 부어주겠느냐?”

너무나 파격적인 제의가 아닐 수 없다. 명희나 상현이 다 같이 깜짝 놀란다.

‘불쌍한 것들,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이별주 한잔 부어준들 어떠랴. ’

임명빈은 안다. 상현과 명희에 대해. 떠나가는 상현. 그들은 다시 못보게 될 것이다.

며칠 전에 용이는 자부와 함께 호열자에 죽은 강청댁의 제사를 지냈다. 세 여자를 앞세운 자신의 팔자도 어지간히 드세다는 생각을 용이는 제삿날 밤 했던 것이다. 본처 강청댁이 죽은 지는 이십 년이 넘었고, 월선의 죽음은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옛일이다. 그리고 작년 초봄엔 임이네가 죽은 것이다.

용이의 로맨스가 끝이 났다. 그와 함께 했던 세 여인이 모두 생을 떠났다. 사실 그의 로맨스는 10년 전에 끝났다. 첫 사랑이었고 유일한 사랑이었던 월선이가 떠났던 그 시점이다. 부모가 짝지어준 강청댁에게 충실했고, 아들을 낳은 임이네를 버리지 않았기에 그의 로맨스는 늘 답답하고 힘겨웠다. 앞 권의 말미에서 병원에서까지 진상을 부리던 임이네가 죽은 것이다. 그 옛날... (나도 이제 소설에 녹아들어서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호박을 훔치던 모습의 임이네를 볼 때만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봤으나 그게 임이네 인생내내 그를 특정짓는 인성이었을 줄이야.

내가 이군 자네한테 똑똑히 일러두고 접은 것은 너거들 식자가 물 위에 뜬 기름이 돼서는 안 되겄다, 그라고 너거들이 무식쟁이 농부, 노동꾼들한테 멋을 주고 있다,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부터 싹 도리내야 한다. 서로 주고받으믄서 운동을 하든 투쟁을 하든, 너거들만 주고 있는 기이 앙이다, 그 말인 기라. 너거들 목적이나 야심, 그기이 아무리 옳은 일이라 캐도 무식꾼들 바지저고리 맨들믄은 천년 가도 그렇고 골백분 정권이 배끼도 달라지는 거는 없일 기다.

석이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관수가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이범준에게 하는 얘기다. 이런 저런 사상들이 개별적이기도 하고 혼합되기도 해서 여러 모양으로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고 있을 무렵이다. 관수가 하는 얘기는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얘기와 다르지 않다. 무엇을 가르치려 할 게 아니다.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주고받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박경리 선생이 이해한 바를 독자에게 자연스레 알려주고 있다.

사 년 전의 일이다. 경남의 도청(道廳)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 가는, 진주로서는 사활에 관한 큰 사건이 있었다. 진주뿐만 아니라 종전까지 진주의 영향권 속에 있었던 마산, 사천, 고성, 통영조차 큰 변동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직할시였던 부산이 광역시로 바뀌고 경남도청소재지를 옮길 때의 일이 떠오른다. 여러 도시가 후보였으나 마산과 진주가 다른 도시보다 강력하게 도청을 유치하고자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산은 당시의 도시규모를 부각시키며 도청의 이관을 주장하였고, 진주는 경남의 중심에 가까운 지리적 위치를 장점으로 내세웠었다. 그런데, 토지를 읽고보니 진주에게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애초 경남도청이 진주에 있다가 부산으로 간 것있구나를 알게 되었다. 사연을 알면 자잘한 역사들도 재미가 된다. 결국, 부산에 있던 도청은 마산도 아니고 진주도 아닌 창원으로 이전했다. 내가 알기로는 마산과 진주가 너무 싸워서 두 군데 중에서 정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는 후문이었다. ㅎㅎㅎ

“잘난 말 몇 마디 하는 것, 그건 아무짝에도 못쓴다. 바보 시늉, 미친 시늉, 뭣이든 빠져나오는 게 젤이제. 싸움이란 그래야 이기는 법이거든. 감정 때문에 힘 빼는 것, 그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다.”

홍이와 석이의 대화 중 나온 말이다. 감정 때문에 힘 빼지 말자. 가끔은 터트려주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겠으나 크게 보고 멀리 보고 살아야 한다. 잘하는 것처럼 착가하면서도 늘 제대로 못하는 게 바로 이거다.ㅠ.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고 이튿날 서희는 서울을 떠났다. 눈을 감고 기차에 흔들리는 서희 귓가에.

“별일 없는데 뭣하러 왔소.”

남편의 부드러운 음성이 울려왔다. 얼굴도 똑똑하게 떠오른다. 흰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 창백한 얼굴이 망막 속에서 미소 짓고 있다. 깡마른 모습, 빛나는 눈동자, 이야기할 때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눈밑에는 잔주름이 모여들었다. 기름기 군살이 다 빠져버린 모습에는 자질구레한 생각마저 걸러낸 듯 확실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서희가 형무소에 있는 길상을 면회한 후 내려가는 길이다. 면회하는 장면 자체를 직접 묘사하지 않고 서희가 회상하는 식으로 해서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이유가 있다. 내게는 어째 더 짠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드라마같고 영화같이 느껴진다. 종은 아니었어도 종이나 다름없던 길상이지만, 깊지 않은 것 같아도 둘 사이에는 더 설명할 필요없는 깊이가 있는 것도 같다. ... 있는 것도 같다...라고 하는 이유는 감히 확정해서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부분 묘사만으로는 깊은 것 같으나 몇 년 간 그 둘의 행보만을 보면 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길상이 하는 말이 내게 하는 말 같다. '별 일 아닌데 뭣하러 깊게 생각하시오' 라고.

“한 이 년 동안 공부 많이 하고 나갈 텐데 변호사가 하도 성화여서 항소는 했지만, 아무렴 어떻소? 너무 걱정 마오. 겨울 걱정도 말아요, 만주벌판 삭풍에 단련된 몸인데. 나는 죄를 져서 이곳에 온 게 아니오. 좀 쉬려고 왔지. 허허헛…….”

바로 앞에서 한 마디. 그리고 지금 이 말. 길상이 오랜만에 등장해서 내뱉는 전부다. 흠... 10권에서 그리 목빠지게 기다린 보람도 없이 말이다. 서희보다 환국이보다 내가 더 그리워한 것인가...

내가 토지를 읽고 있으니 옆에 있던 아내가 10년 전 쯤에 했던 드라마 토지를 몇 편 찾아 본다. 나도 곁눈질로 조금 훑어 보았다. 그게 내 상상을 살짝 가둔다. 저 말투에 배우 유준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본 건 아닌데도 말이다 ^^; 아뛰... ㅎㅎㅎ

“모르겠구나. 하느님은 공평하신가 보다.”

“예?”

‘연한 심장이 찢기어 죽지 않으려면 너처럼 병들어야 하나 보다. ’

병든 봉순에게 서희가 하는 말이다. 재주가 많으니 화도 많다는 얘기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버티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어떤 이는 악을 써서 버티고 어떤 이는 병이 들어 버틴다. 입밖으로 내는 말이 있고 마음으로 삭히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서로를 의지해온 둘은 그렇게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서글프게 감추기도 한다.

“우리도 옛날에는 땅마지기나 가지고 납부럽잖게 살았소. 그랬는데 왜놈들이 들어오고 영문이 깨지믄서부터 문서 없는 땅이라꼬 솔빡 뺏기고 말았구마요. 아부지는 그때 화벵으로 돌아가시고 우리는 고생길에 들어선 기라요. 산 목심 굶고 앉아 있일 수 없는 일이고, 빼앗긴 내 땅을 소작할밖에 달리 길이 없더마요.

평범하게 농사를 지으며 일상을 살았던 농민들도 화전민으로 몰려나는 세상이다. 경작하던 농토는 몰라서 뺏기고 알아도 억울하게 뺏겨버리고 만다.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하는 것은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갈 뿐이다. 마름의 행패도 더 견디기 힘들다. 아무 가진 것 없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안또병은 가족을 데리고 달아났다. 김강쇠가 그 가족에게는 구세주가 되었다. 나무를 모으고 짚을 모아 허수하나마 집을 짓고 그렇게 화전민이 된다. 하지만 마음은 더 홀가분하여 희망이 솟구친다.


아슬아슬하던 용이는 오히려 버티고 있으나 임이네는 먼저 갔다. 평사리 시절 꼬마들이 점점 더 소설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간도에서 태어난 환국이와 윤국이를 비롯해 그들의 세대도 자라나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세대가 서서히 바뀌는 것이다. 새로운 인물들도 계속 등장한다. 토지를 되찾고 나서도 서희의 심난함은 가시지 않는다. 길상의 얘기는 가려진 게 너무 많다. 소설을 읽으며 그 시대를 함께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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