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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주는 힘/2019년 독서록

토지14권

천진 김 2019. 3. 2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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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권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건데, 토지는 각권 맨 앞장에 지도를 하나 펼쳐놓고 시작한다. 1부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간도, 3부에서는 다시 평사리(하동과 진주까지 포함)였던 것이 4부에서는 한성(서울)으로 바뀌어 있다. 4부 1권과 2권만으로 보면 한성과 평사리(진주 포함)의 비중이 비슷한 듯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는 의미일 것 같기는 하다. 14권에는 4부의 2편 '귀거래' 나머지와 3편 '명희의 사막' 10장 전체, 그리고 4편 '인실의 자리' 2장까지가 담겨있다.

길노인의 생일잔치로부터 14권은 시작한다. 알고보니 생일잔치는 그저 밖으로 보이는 명목이었을 뿐이다. 길노인의 집에 송관수, 김강쇠, 장연학, 조막손 손가 아들 손태산, 해도사 등이 모였다. 모두 동학 운동의 한 갈래로써 뜻을 이어왔던 사람들이다 지금은 독립에 힘을 쓰고 있다. 소지감은 낯선 사람이지만 자리에 함께 했다. 뜻이 같기 때문이다.

두만네는 며느리의 모습이 안타깝다. 시부모 봉양하고 아이들 낳아 잘 키워가며 정성을 다하지만 두만에게는 늘 괄시를 받기 때문이다. 아예 두만은 진주에 따라 나가 산 지는 오래되었다. 진주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아 지역유지가 되었으나 본처에 대해서만은 무시하고, 하동에 대해서만은 외면한다. 그런 그에게 두만의 아비는 집과 선영봉사를 두만에게 넘기지 않겠노라 선언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수에 와서 여옥과 함께 지내던 명희는 다시 떠난다. 통영에서도 더 들어간 작은 시골교사로 간 것이다. 조찬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유인실과 오가타를 대동하고 기어이 형수를 찾아간다. 하지만 아무런 위로도 아무런 방책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미안한 마음만 알리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윤국이 방황하는 가운데 영산댁과 함께 지내고 있는 숙이와 은근 밀당을 한다. 빨래터이자 낚시터는 그들의 만남 횟수를 더해준다. ^^

길상은 석방되어 돌아왔다. 길상이 돌아오기 전 일본 형사인 구마가이 경부가 진주의 서희집을 방문한다. 구마가이는 예의가 바르다. 둘의 대화는 겉으로는 일상 대화 같았으나 엄격했고 긴장이 넘쳤다. 경고를 주기 위한 방문이었고 무슨 소리냐는 대답이었다.

석이가 잘 풀리는 듯 해서 좋아했던 석이네 성환할매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석이는 쫓기는 몸이되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희가 내 준 땅은 딸 순연과 사위 귀남아비가 경작하고 있으나 오히려 그들은 어미이자 장모인 성환할매와 석이의 아이들인 조카들에게는 성실하지 않은가보다. 둘째 딸 복연이가 오랜만에 친정에 와서 바른 소리를 해가며 티격태격한다.

우가의 칼을 피하다 오히려 우가를 죽였던 오서방은 감옥에 갔고 오서방댁은 마을에 남아 우가 식구들로부터 서러움을 받는다. 옛날 김훈장이 그랬듯이 그 손자 범석이는 마을 사람들의 상담자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랜 세월 이름만 등장했던 야무가 평사리로 돌아왔다. 아직 이 번 권에서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명희 못지 않게 인실이 주요 인물로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인실이 가르치는 학생의 문제로 조용하를 찾아가서 문제해결을 요구하기도 하고, 일본인 이지만 관동지진 때 조선인을 도와주었던 오가타와의 사랑은 조금은 더 결실을 이루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명희의 소식을 아는 인실은 조찬하를 도와 통영으로 향했다. 오가타도 동행했다. 찬하를 위한 행로인지 연인의 여행에 찬하가 끼어든 것인지 아리송하게 되었다.

김훈장의 양자인 한경이지만 김훈장의 묘를 이장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 참에 한복이 동행하고 관수도 간도로 향하게 된다. 석방되서 진주에 내려온 길상은 조용하지만 자연스레 리더로 인정받는 듯 하다.

관수가 자신의 딸 영선을 데리고 강쇠에 산골 집으로 찾아간다. 강쇠의 아들 휘와 영선이 혼례를 한다. 안서방네 딸 순이의 순진한 기대는 무너지고 휘가 갈등하기도 하지만 인연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무기로 삼는 냉철함이 일본 위정자들의 전통이랄까, 동경 진재 때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을 위기의식에 광란한 국민들 손으로 때려잡게 한 것도 그 예의 하나지만, 광주학생사건 뒤처리 역시 민족주의라는 것은 깔아뭉개고 공산주의를 표면에 내세워 대량 검거, 대량 투옥을 합리화하고 있는 게지요.

일제강점기때부터 이어져 온 참 오래된 폐습이구나... 정연한 논리로 다툼을 하다가도 모든 것을 매몰시켜버리는 이념대결의 마력말이다.

예수께서 처음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시몬의 형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그들이 어부였다는 것은 상당히 암시적인 일이 아니었나 하고 난 가끔 생각할 때가 있어. 어부한테선 뭔지 모르지만 인간의 원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거든. 마음이 늘 파도에 씻기기 때문인지 땅에 정착하여 울타리를 쌓아올리는 생활이 아니어서 그런지, 어부들한테 비하면 농민들은 차라리 교활한 편이고 상당히 방어하는 자세로 나온단 말이야

어부가 들으면 좋아할 말이다. 마음이 늘 파도에 씻긴다 ^^ 농부가 들으면 싫어하겠군... ㅎㅎㅎ

“귀남애비 하는 짓이 하 괘씸해서 자식이라고 설운 은정(하소연)하믄 누가 그런 사람한테 시집보내라 했는가 날보고 우짜라는고 얼굴이 벌게지믄서…… 으흐흐흐…… 어매 참으소 날 봐서 참으소, 그 말 한마디믄 될 긴데 어디 한 분 그런 말 하까. ”

그래! 뭘 어떻게 바꾸라는 게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을 알아주기만 하면 된단 말이다. 그거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는고... 신포도 너 말이다!

“사촌은 형제 아니건데? 더군다나 귀남이 니는 혼자 아니가. 후제 커서 남허고 싸울 때 누가 편들어줄 기고. 살아갈라 카믄 오만 일이 다 있는데 외롭으믄 안 된다. ”

언니 순연에게 동생 복연이 하는 말이다.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한다. 와닿는 말이긴 한데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운 말이 되가고 있다. 점점 더 친척은 적어지고 그나마도 멀어지고 소원해지고 있다.

술이란 진담을 할 수 있어 좋고 행패 부릴 용기가 나기에 좋고 또 잊을 수 있어서 좋은 게요.

그랬나요? 그렇군요 ^^* 그러면 술 못마시는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오가타는 술잔을 들면서 쓴웃음을 머금는다. 전개될 이야기의 내용을 대강은 짐작하고 있다는 그런 표정이다

전개될 이야기를 짐작하고 쓴웃음을 머금는 모습. 나도 많이 해봤다. 상대방도 다 느꼈을 것이다. 그런 장면들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가 얼마나 오만하게 보였을까...

관수는 자꾸 헛웃음을 웃었다. 이날 밤 한복은 만취된 관수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우찌 이리 날이 안 새는고. 우찌 이리 맨날 밤이가 말이다. 캄캄한 밤만 있노 말이다. 으흐흐흐……. ”

독립은 언제 되는 것인가? 일제는 언제 물러난단 말인가... 캄캄하다... 한이 서린 그 말은 조선인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흔히들 백색은 모든 빛깔을 포용한다 하지만 그건 피상적 견해에 불과해요. 다만 색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출발점에서 수많은 산과 강을 넘고 건너서 돌아온 출발점, 백자를 그런 빛깔이라 표현하면 되겠는지,

백자의 백색은 그냥 백색이 아니다. 백자가 머금은 백색은 수많은 산과 강을 넘고 건너서 돌아온 출발점이다. 와~

오늘 이 지경으로 잔인무도한 발아래 신음하지만 조선인들은 도무지 당신네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일본은 콤플렉스 때문에 우릴 업신여기고 또 거드름을 피우기 위해 우릴 업신여기는데, 생각해보십시오. 잔인성에 길들여진 당신들과 도덕으로 길들여진 우리 백성과, 그러면 모멸의 깊은 진심이라 해도 좋겠는데 그건 어느 쪽일까요? 도덕적인 기준에서 문화적인 척도에서 조선 백성들은 당신네 정체를 바로 파악하고 있거든요. 조선의 농민들은 선비정신의 토양이에요. 또 선비정신의 씨앗이 뿌려진 대지이구요. 양반계급이 학문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하여 무학(無學)이지만 무식(無識)은 아닌 거예요. 그들은 가난하지만 예절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탱한다는 것을 알구요. 조선 백성들이 일본인을 향해 즐겨 쓰는 말 중에 상놈이란 말이 있어요. 그것은 신분을 말함이 아닙니다. 예절을 모른다, 사람의 도리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지금 삼천리 강산에서 사리사욕을 위해 친일을 한 소수의 무리, 이미 썩어서 쓸모없게 된 무리를 제외하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일본인 멸시의 뿌리는 뽑을 수 없을 거예요.

정말 다들 그런 듯. 내 주변을 봐도 그렇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한국인들 밖에 없다고. ㅎㅎㅎ

“나카노 시게하루도 있지요.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品川驛)」말입니다. 신(辛)이여 잘 가거라, 김(金)이여 잘 가거라, 그대들은 비 내리는 시나가와 역에서 승차한다, 그 시를 쓴 나카노 시게하루. ”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는 시인이면서 소설가, 평론가이며 나프[NAPF, 全日本無産者藝術團體協議會]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비 내리는 시나가와 역」은 조선의 독립과 독립운동에 대한 뜨거운 지지를 나타낸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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