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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장일기
토지3권 본문
3권은 제3편 '종말과 발아'의 11장부터 21장까지, 제4편 '역병과 흉년'의 15장까지가 담겨있다.
호열자가 조선 땅을 휩쓸었다. 평사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최참판댁의 땅을 두루두루 돌아보며 점검을 하던 김서방이 쓰러졌다. 호열자가 그를 덮쳤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콜레라에 걸린 것이다. 최치수도 죽었고 남자 하나 없는 최참판댁에서 든든한 집사였던 그가 죽었다. 강청댁도 갔고, 하나씩 둘씩 죽어나간다. 여기까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침모역할을 하며 윤씨부인을 도와 서희를 길러내고 있던 봉순네도 죽었다. 그리고, 윤씨부인도 죽었다... 최치수의 죽음과 김서방의 죽음에는 긴 이야기가 있었지만 봉순네와 윤씨부인의 죽음에는 그렇지 않다. 허무하고 빠르게... 왕좌의 게임에서 스타크가문의 아버지와 장자와 엄마가 죽어가는 속도보다 빠르다. 주요인물의 급격한 퇴장과 함께 이야기의 전개가 확 달라지는 것은 미드보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가 훠~월씬 앞서고 있으니 그들이 선생을 벤치마킹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
이제 최참판댁은 조준구의 세상이 될 참이다. 그를 배제하는 사람이 있고 그의 기회에 얹혀가려는 자들이 있다. 수동과 길상과 봉순이는 서희를 도와 최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려 한다. 삼수는 확실히 조준구의 편에 섰다. 삼월이는 조준구에 농락당하고 홍씨부인에게 매질을 당한다. 어느 편에서도 반기지 않는 신세다.
평사리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흉년이 길어지니 결국은 아사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난다. 존재감이 없던 서서방과 아내, 그리고 며느리 안산댁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역병만으로도 힘겨웠던 평사리는 흉년으로 이중고를 겪으며 신음한다. 윤씨부인이 살아 있었더라면 최참판댁의 고방(곡식창고)에 있는 곡식은 평사리 주민들의 형편에 따라 골고루 나눠줬을 것이다. 그러나 조준구는 이를 기회로 삼는다. 평사리 주민들을 니편과 내편으로 가르며 구제한다.
용이의 사랑이야기는 최참판댁 토지(재산)이야기 못지 않게 흥미롭다. 죽은 칠성이의 아내였던 임이네가 돌아왔고 용이의 아이를 낳았다. 월선이 또한 간도에서 돌아와 읍내에 있다. 용이는 두 집 살림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느 한 쪽 여인도 다른 쪽에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호열자로 죽은 강청댁이지만 용이의 의식에 남아있기에 용이 자신도 당당할 수는 없다.
곰보 목수인 윤보는 정의롭다. 김훈장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최치수의 절친 이동진은 5년만에 돌아와서 최참판댁의 불행을 늦게 알게 된다. 그러나, 그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구천을 묘향산 부근에서 만났다는 것만이 다음 언제쯤 이야기 흐름에 단서가 될 것 같기는 하다.
평사리 작은 마을임에도 왜군 소대가 나타났다. 지나가는 길이는 하지만 점점 더 시절은 조선의 몰락으로 향하고 있다.
김훈장은 시큰둥해서 말했으나 사내놈이 채신머리없이 아이까지 안고 나오느냐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서서방은 서서방대로 우리는 양반이 아니니께요, 새 물 묵듯 하는 어린것 배 곯릴 수 있겄소? 하는 투의 표정을 나타내었다.
애써서 다른 표현을 찾지 않았다. 아예 속마음을 기술하여 표정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이다. 그럼에도 어떤 표정일지 잘 떠올려진다.
처성자옥(妻城子獄)을 운운하는 자는 상종할 위인이 못된다는 꼬장꼬장한 어른들의 훈도
그 시대까지 참 오랬동안 저랬나보다. 집안일은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것은 남자의 무관심이 아니라 남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사상이 애처롭다. 실은 요즘에도 그런 이들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으니 세상이 바뀌려면 일백년으로는 한참이나 부족하다...
‘세상에 별놈의 죽음이 다 있지마는 굶어 죽는 것같이 애참하까.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사꾼이 더 많이 굶어죽는다. 와 그러꼬? 풀 한 페기 뽑아본 일이 없는 놈들이사 어디 굶어 죽던가? 와 그러꼬?’
와 그러꼬? 왜 그럴까...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희한한 세상. 이건 그 시대만의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