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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주는 힘/2019년 독서록

토지4권

천진 김 2019. 3. 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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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은 제4편 '역병과 흉년'의 16장부터 20장까지, 제5편 '떠나는 자, 남는 자'의 18장까지가 담겨있다.

대하소설이라 역시 호흡이 길다. 하지만, 긴 호흡에 맞춰 따라가리라 마음을 다잡았던 덕에 지루함은 없다. 오히려 매 권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세월이 흐르니 사람도 죽어나간다. 불구가 되었고 종이었을 뿐이지만 서희의 편에서 그나마 든든하게 뻗대주던 수동은 오랜 병고 끝에 죽었다. 이제는 길상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졌다.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던 고종은 강제로 퇴위되었다. 술렁거림은 한적한 시골인 평사리에 까지 이어졌다. 서울에서 돌아온 윤보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은 뭉친다. 횃불을 들고 최참판댁을 향한다. 창고를 열고 집안의 패물까지 쓸어서 수레에 싣고 마을을 떠난다. 용이와 길상, 김훈장도 떠났다. 일본군에게 대항하려는 참이다. 조준구의 편에서서 어깨에 힘을 주던 삼수는 서울에서 온 다른 하인들에게 밀려나 이를 갈며, 마을 사람들을 돕는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다시 제 잇속만 차리려 조준구와 홍씨가 숨은 곳을 알면서도 숨긴다. 하지만 조준구는 위급한 상황에서 한 약속을 지킬 위인이 아니었다. 삼수는 다시 한 번 버려지고 일본군의 총에 죽는다. 삼수의 배신 탓에 서희는 오히려 더 곤경에 처하고 만다. 더 확실하게 최씨의 재산이 조씨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최참판댁에서는 구천으로 지냈던 김환은 거지꼴로 떠돌다 연곡사로 돌아왔다. 서희의 어머니인 별당아씨는 묘향산 부근에서 죽었다. 환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의병의 기치를 떨치려 했던 윤보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윤보가 죽고나니 구심점을 잃은 무리는 힘을 쓰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김훈장과 용이와 길상은 새로운 곳을 향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서희와 월선과 임이네까지 동행하여 멀리 떠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간도다. 이부사댁 상현은 아버지 이동진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여정에 함께 한다. 언제나 서희와 함께 있던 봉순은 합류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의 주무대는 평사리로부터 영영 멀어지고 마는 것일까? 아직 열여섯 권의 이야기가 뒤로 줄줄이 남아있는데 평사리를 벌써 떠나려니 아쉽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그냥 재밌는 이야기 정도가 아니다. 지나간 시대를 세세히 알려준다. 정취를 느끼게 해줄 뿐만아니라 사람들의 머리속에 있던 의식이 어땠는지도 설명해준다. 날로 기울어가던 조선을 둘러싼 당시 국제정세도 알려준다. 하나하나 풀어쓴 해설이 아니라 저자거리의 상인들이 주고 받는 말들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박경리 선생은 소설가일 뿐더러 깊이 있는 사상가인 듯도 하다. 

                           

제반의 행사는 항상 무속을 동반했으며 최고 도덕인 효 사상은 조상으로 하여금 자연 종교에서의 제신(諸神)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였으니 신앙의 대상이라면 그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는, 어떠한 종교이든 자리를 내어줄 것을 주저하지 않는 저 유교와 불교가 오랜 세월 아무 알력도 없이 공존해왔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목신(木神)이든 산신(山神)이든 지신(地神)이든 풍신(風神)이든 상사바위든 벽사(辟邪)의 처용화상(處容畵像)이든 성황당에 모신 가면(假面)이든, 고사에 연유되거나 혹은 전설에 유래한 인물과 장소는 거의가 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정성을 들여왔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었고 어느 하나만을 믿는 사람도 드물었다. 저 서학(西學)이 있기까지는. 상호 연관되고 서로 얽혀서 그러면서도 불가사의하며 모호한 것을 맹신하는 마음에는 언제나 재앙에 대한 두려움, 천벌에 대한 무서움으로 가득 찬 소박하고 선량한 체념의 무리가 이 서민들이다.

...

신령에 관한 행사는 대행자인 무격(巫覡)들에게 맡겨버리고 실행하는 것은 삼강오륜의 생활방식으로써 신비와 운명에 자신들 의지를 위탁하였으면서도 오로지 단 하나의 이성이며 실천과 노력을 도모하는 것이 유교적 인생관은 아니었었는지. 식자들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겨 쓰는 도리라는 말이 있는데 자식 된 도리, 부모 된 도리, 사람의 도리, 형제의 도리, 친구의 도리, 백성의 도리, 이 도리야말로 생활의 규범이다.

권력가들은 달랐을지 몰라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유교와 불교가 공존해 왔으며 각종 무속이 그 안에서 명맥을 이어 내려왔다. 불의로 인한 재앙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선량한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모든 신앙이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믿음이 없는 듯하면서도 모두가 신앙이 있었고, 다른 것을 배제하고 어느 하나만을 신앙으로 삼는 이도 없었다. 어떤 믿음은 자연의 영역에서 어떤 믿음은 생활의 영역에서 각각 서민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의지할 곳을 주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불문곡직하고 최참판댁에 불려간 한조는 힘깨나 쓴다는 서울서 데려온 하인 녀석과 합세한 삼수한테 매를 맞은 것이다.

“와 이러노? 무, 무신 일로 사, 사람을 패노!”

했으나 그 말대꾸는 없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가능했나보다. 당시에도 법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의한 일이 행해졌어도 법이 그곳에 미치지는 못했고, 나아가 법은 그곳에 도달하려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래전 조준구를 두고 빈정거렸던 한조는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매를 맞았다. 종국에는 조준구의 악의에 의해 일본군에 죽고 만다.

강물을 물들여놓고 해는 떨어졌다. 숲에서 시작한 어둠은 절간 뜨락에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짧지만 내게는 강렬한 문구였다. 갑자기 영화처럼 눈앞에 해가 넘어가는 장면이 내 앞에 선명하게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끝은 그 자체보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에서 더 많은 의미를 남긴다. 나와 상관없는 저 멀리 있던 것은 어느새 내게로 다가와 의미가 되고 있다.

최참판댁에서는 연이네가 사잣밥, 소금, 간장을 조금씩 퍼내어 문밖에 뿌리고 깨어서 조각낸 호박도 여기저기 뿌리고, 하인 하나는 지붕에 올려놓은 적삼을 불태우고, 그것으로써 수동의 육신과 혼령은 깨끗하게 처리되고 말았다.

수동의 죽음 후 장례는 쓸쓸했다. 한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간 후 어떤 풍습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을 사람들은 김훈장의 소식을 궁금해하였다. 궁금한 나머지 어느 덧 김훈장은 마을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의병장으로 등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츰 전설적인 인물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 자신의 자존심의 소이였다. 왕시, 김훈장을 두고 화심리에 사는 장암 선생 수제자로서 학식이 깊다고 믿었으며 자랑으로 생각했던 그 심리와 흡사했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마을 사람의 공통 심리였다. 꼭히 믿는 것도 아니면서 즐거움을 위해 믿어보는 것이다. 희망이 적은 그들의 감정적 사치였을 것이다

이런 심리... 누구나 많이 가져봤을 것이다. 나는 아니지만 나를 대신해 주는 그 무엇... 그리고, 부풀림. 꼭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즐거움을 위해. 희망이 적은 이들의 감정적 사치. 이렇게 정의해주니 복잡함이 없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서로 공대도 하대도 아닌 어중간한 투로 얼버무리는데 월선이는 임이네보다 다섯 살이 위였으니까 그랬을 것이며 임이네는 아들 낳은 용이 여편네다, 하는 자부심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하하... 썩소가 절로 나온다. 내가 요새 그렇다. 어중간한 투로 얼버무린다. 상대도 내게 그런다. 나는 언제쯤 더 마음이 넓어지려나, 언제쯤 내 들고 있는 작디 작은 그릇을 깰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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