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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병이야기 4

천진 김 2021. 7. 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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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병에 관한 네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병명은 바쁘다 병이다.

나는 어느 순간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직원들이 그래서 내게 연락을 하면 바쁜데 죄송하지만이라는 말을 먼저 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되시냐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바빠서 죽을 것 같다는 허세를 부렸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된 것이 있는데 후배 직원들이 나를 어려워하고 피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속으로 그랬을 거다 '아니 바쁘면 얼마나 바쁘길래 부탁할 때마다 불편하게 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나의 이 바쁘다 병은 나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하는 일이 조직에서 유일한 일이었고 그 일을 한다는 묘한 자만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조직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재 하는 일이 뭐야? 노는 거는 아니지?'라는 말을 듣곤 했다.

당시 나의 일은 조직에서 보편적인 일이 아니었고 리더도 업무를 알지 못하는 특수한 일로 업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전산 개발자 일이었다.

그러니 매일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면서 생소한 것에 영어를 쓰고 있는 일이니 일을 하는지 다른 것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  골방 같은 공간에 틀어 박혀 꼼짝 않고 타이핑을 하고만 있었으니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노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당시 나의 주된 멘트가 있었다.

'전산은 공기와 같아서 평상시에는 중요성을 알 수 없지만 쉼을 쉴 수없으면 공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듯이 고장이 나야만 그 중요성을 일반인이 알 수 있는 거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매일 밤늦게 까지 일을 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새벽에 출근을 해도 표시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상황이 젊은 나에게는 약 오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누가 부탁을 해오면 '내가 노는 줄 알고 부탁을 하는구나.'하고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부탁에 '나는 바쁜 사람이다.'라는 표시로 바쁘다 병이 생긴 것 같다.

별로 바쁘지 않으면서도 그 병은 내 입에 붙어서 습관적으로 나오게 되어버렸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그 병이 생긴이 후로 내게 부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부탁하면서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 '바쁘다 병'은 내게 다른 부작용도 가져다주었다.

이 '바쁘다 병'이 입에 붙으며 나는 스스로 여유를 기억 저 편에 묻어버렸던 것 같다.

내가 바쁘다 병에 맞추어 바쁘게 살아야 하는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겼고 매사에 여유를 가지고 주의 깊게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 하는 일에서 실수가 발생하기도 하고 덤벙거리는 성격의 사람이 되어 갔다.

나를 수고를 알게 하겠다는 생각에 생긴 이 바쁘다 병이 결국 나를 진중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세간의 평가에 휘둘리는 것은 아니지만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맞고 내 삶에서 여유를 잃어버리게 한 것도 맞다.

바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바쁜 척은 좋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삶의 여유마저도 잃게 하는 이 못된 지병 '바쁘다 병'이 나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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